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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축구의 방향 (3): 백3의 가능성

하프타임 분석관 | 2016. 9. 5. 14:20

현대축구의 방향: 프리미어리그가 전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리그가 될 수 있을까?

현대축구의 방향 (2): 현대축구의 흐름

패스축구가 세계축구에 미친 영향은 컸다. 자존심 강한 잉글랜드 축구팀들도 그들을 선망하며 스페인과 네덜란드 감독 및 선수들을 데려왔다. 덕분에 패스 축구의 기틀을 마련한 두 국가는 강력한 대표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어딜 가나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축구에선 이탈리아가 그렇다. 전 세계 프로팀들이 패스 축구의 기본 틀인 4-3-3 혹은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 그들은 여전히 '백3 (Back Three)' 포메이션을 선호했다. 따라서 혹자는 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 팀들이 정상에서 멀어진 이유 중 하나로 백3 전술에 대한 '고집'을 꼽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프리미어리그서 백3를 사용했던 팀들의 부진한 성적을 들 수 있다. 루이스 반할,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스티브 브루스, 브랜던 로저스, 로날드 쿠만, 샘 앨러다이스 등의 감독이 백3를 채택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모두 처음에는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로저스의 리버풀은 2013/14 시즌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루이스 수아레스-다니엘 스터릿지 조합은 투톱의 가능성을 일찍이 보여줬다. 동시에 백3의 인기도 예고했다. 빠른 공수전환은 물론이며 스티븐 제라드의 적절한 롱패스까지 더했다. 현대축구상(相)에 가장 걸맞은 팀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처럼 꾸준히 경쟁력을 끌어올린 팀은 없었다. 공격적으로 백3를 사용한 팀들의 한계였다. 이들은 그에 걸맞은 선수단을 유지하지 못했고 빠르게 수정해야 했다. 수비적으로 백3를 사용한 팀도 마찬가지다. 발전 가능성만 보였을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사실, 유벤투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3가 만연한 자국 리그서는 누구도 따라올 자 없는 우두머리이나, 유럽 무대만 나가면 체면을 구겼다. 백3가 여전히 세계무대서 뒤처지는 경쟁력을 가졌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것이 꼭 들어맞지만은 않는 것 같다. 최근 치러진 큰 국제대회서 백3 포메이션의 성공이 두드러졌다. 특히 수비축구를 펼치는 팀일수록 더욱 그렇다.


2014 브라질 월드컵서는 네덜란드와 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우루과이 등이 백3를 사용했다. 칠레와 멕시코의 경우 조금 더 공격축구를 선호했지만, 이들은 주로 수비에 중심을 두다 날카로운 역습으로 상대 배후를 파고들었다.


호르헤 루이스 핀투 감독이 이끌었던 코스타리카가 좋은 예다. 우루과이, 잉글랜드, 이탈리아와 같은 조에 속해 일찍이 대회 탈락이 예상되었으나, 정작 조 1위로 본선에 올라 월드컵 8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유로 2016서는 웨일스와 이탈리아가 3-5-2를 사용해 큰 재미를 봤다. 단발적이긴 했지만, 독일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를 때도 백3를 사용했다.


이렇듯 백3는 대표팀이나 특정 클럽서 여전히 요긴하게 쓰인다.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프로 무대서 흔치 않은 시스템이나, 변화를 주고픈 감독들의 손아귀서 항상 맴도는 매력적인 카드다.

'백3의 대명사' 유벤투스는 2014/1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비록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떠나고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백3 포메이션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대표팀이 아닌 클럽 축구에서도 백3가 경쟁력 있다는 걸 세계강호들이 모이는 무대서 증명했다.


그들이 속한 이탈리아 세리에A는 현대축구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외면받았다. 느린 템포와 소극적인 전방압박이 한눈에 봐도 현대축구의 흐름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유벤투스의 성공은 우연일까?, 과연 백3는 앞으로도 효과적일까?, 대체 백3의 매력은 무엇일까?


과거 백3 시스템은 투톱을 잡아두는 데 그쳤다. 원톱의 유행과 함께 사라졌다. 유로 2012를 통해 이따금 잉여 수비수가 빌드업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대다수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래로 내려가 공을 받아주는 이른바 변형 3백, '포켓 플레이'로 충분히 만족했다.


최근 몇 년간 4-4-2 포메이션이 유행을 끌고 있음에도 아직 백3 시스템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이유 또한 4-4-2를 펼치는 팀들이 강팀이 아닌, 약팀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레스터가 제이미 바디의 연속골 기록에 힘입어 기세가 매서울 때, 반 할 감독의 맨유가 백3 카드를 꺼내 들어 그를 저지하려고 한 정도가 전부였다.


리누스 미헬스 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4-4-2가 성공하기 위해선 영리하거나 압도적인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있어야만 한다. 게다가 투톱 간의 호흡이 좋아야 하는데, 이미 4-4-2 포메이션의 약점이 드러난 오늘날의 축구서 약팀들이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또, 강팀들의 입장에선 굳이 공격수나 미드필더를 수비진으로 내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백3는 이탈리아와 같이 과거부터 즐겨 사용한 국가(수비 중시)나, 하위권 팀들이 수비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혹은 의도적으로 상대 투톱을 저지하려는 경우가 아니고선 일시적 대안에 그쳤다.


유독 백3가 꾸준한 사랑을 받는 국가대표팀은 운영 특성상 전술적인 측면에서 클럽 축구보다 뒤처진다. 그렇다 보니 국제무대서 백3는 공격-미드필드-수비 어느 한 부분을 강화하거나, 깜짝 전술로 사용하기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오히려 이 시스템의 가능성을 알고자 한다면, 패스 축구를 선호하는 감독들의 실험을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 시절 번번이 백3의 적용 가능성을 살펴봤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서도 하비 마르티네즈와 필립 람을 중앙에 기용하며 백3를 실험했다. 이와 비슷한 공격적 이유로 마르셀로 비엘사와 호르헤 삼파올리, 로날드 쿠만, 토마스 투헬, 위르겐 클롭 등의 감독이 백3 카드를 꺼냈다. 


적용이 쉽지 않지만, 쉽사리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가동하는 3-43 포메이션은 축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형이라 할 수 있는 4-4-2와 4-3-3 포메이션의 특성을 모두 지닌다. 경기장에 선수들을 골고루 배치할 수 있고 수적우세를 가져가 전방이든 후방이든 팀 압박이 쉽다.


조나단 윌슨은 백3의 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백4가 상대 원톱을 상대할 경우, 한 선수가 공격수를 마크하고 나머지 선수가 그 뒤를 커버하는데, 투톱을 상대하게 되면 뒤에서 공간을 커버해줄 선수가 없다. 가뜩이나 풀백은 상대 윙어를 막아야 하기에 그들을 도울 수 없다. 패스축구가 강조되면서 최소 1명의 스위퍼형 수비수를 기용하는 오늘날, 이들이 전진 플레이까지 펼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요즘 센터백의 수비능력은 떨어진다. 속도와 발기술이 강조된 만큼 대인방어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반대발 윙어의 등장은 잉여 수비수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했다.


즉, 백3는 그동안 수비적인 시스템으로서 찬사를 받아왔지만, 공격적으로도 꾸준히 발전해왔다. 게다가 백4는 공격을 핑계로 수비에서 문제점을 드러내어 백3의 등장 가능성을 부추겼다.


백3는 이제 공격과 수비 어느 한쪽만의 전술 시스템이란 선입견서 벗어나고 있다. 백3를 기반으로 했던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와 네덜란드의 '토탈풋볼'이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벤투스의 진화는 카테나치오가 토탈풋볼을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다시 말해, 수비축구가 공격을 지향하는 바다. 수비를 지향했던 현대축구가 공격적인 자세로 바뀌어 간다는 점에서 토탈풋볼이 카테나치오화(化) 되어 가는 것보다 긍정적이다.

유벤투스가 정상에 오른 것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발기술과 대인방어 능력이 좋은 자국 수비수들의 탄탄함을 기반으로 현대축구의 특징을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최전방 투톱으로 기용했던 마리오 만주키치-카를로스 테베스, 알바로 모라타-파울로 디발라 모두 활동량이 많고 수비가담도 적극적이다. 골 결정력뿐만 아니라 후방서 공을 운반하거나 창의적인 패스 혹은 드리블 돌파 능력까지 갖췄다.


더불어 유벤투스의 미드필더들은 현대축구서 요구하는 창의성과 기동력 모두를 갖춘 세계 정상급 전력으로 채워졌다. 공수 양면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수비진도 측면 자원은 중앙서 뛸 수 있는 기술을 갖췄고 중앙 수비수 모두가 빌드업을 펼쳐나갈 수 있다. 이러한 압도적인 스쿼드가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적 우위를 가져가는 데도 한몫했다.


유벤투스의 행보와 로저스의 리버풀이 우승 문턱까지 갔듯, 단지 백3라고 하여 세계무대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2013/14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조세 무리뉴의 첼시는 우승을 확정 짓는데 중요했던 후반기 노리치 시티전과 리버풀전서 마찬가지로 백3를 사용해 승리를 거뒀다.


백3는 지금껏 약팀들에 의해서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은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은 점을 무마하려고, 객관적 전력의 차이를 줄이려고 수비수를 늘렸다. 그러나 강팀들은 전방에 더 많은 선수를 두려고 백3를 꺼내 든다. 이것이 백3가 절대 상위 레벨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뛰어난 감독과 선수단은 공격적인 백3를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인 셈이다.


④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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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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