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이적시장을 끝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됐다. 특히 이번 2016/17 시즌은 두 맨체스터 형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를 중심으로, 전 세계서 내로라하는 명성을 떨친 스타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 리그에 대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더욱이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는 여름 이적시장서 떠날 것이 확실시했던 팀의 핵심선수들을 지켜냈다. 제이미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 다니엘 드링크워터 등의 잔류는 자신들이 그저 이변을 낳았던 약팀으로만 남지 않으리라는 포부를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시즌 막판 아쉽게 우승을 놓친 토트넘 핫스퍼 또한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 에릭 다이어와 같은 주축 선수들을 모두 지켜냈다.
그러나 이번 시즌 화려한 선수단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이들을 이끄는 '감독'이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레스터), 아르센 벵거(아스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토트넘), 위르겐 클롭(리버풀), 슬라벤 빌리치(웨스트햄) 등이 그대로 팀에 남았고 로날드 쿠만(사우스햄튼→에버튼)과 조세 무리뉴(첼시→맨유)가 새로운 팀을 맡았을 뿐, 여전히 훌륭한 감독들이 리그에 남아있다.
이뿐만이었다면 이번 시즌이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그 '새로움'을 더할 인물로 펩 과르디올라(맨시티)와 안토니오 콘테(첼시), 왈테르 마짜리(왓포드), 클로드 퓌엘(사우스햄튼), 아이토르 카랑카(미들스브로)가 가담한다는 걸 알아챌 때면, 이 새로움이 '특별함'으로 느껴질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전(前) 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라이벌 경기)를 이끌었던 무리뉴와 과르디올라 두 감독 간의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콘테와 마짜리는 이탈리아서 '백3' (Back 3)를 대표하며 리그 우승을 뜨겁게 다툰 장본인이다. 또, 이 둘은 자존심 강한 이탈리아 감독으로서 '동향'인 라니에리 감독과 프란체스코 귀돌린(스완지 시티) 감독과의 지략대결도 기대케 한다.
끝이 아니다. 강팀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영국 감독' 마크 휴즈(스토크 시티), 앨런 파듀(크리스탈 팰리스), 토니 풀리스(웨스트 브롬위치), 에디 하우(본머스)가 건재하고 한때 에버튼과 맨유를 지휘했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선더랜드 사령탑에 올랐다.
얼마 전 승격팀 번리를 이끌고 지난 시즌 레스터가 이변을 일으킨 방법을 따라 리버풀을 잡은, 션 디쉬 감독도 이 경기를 통해 자신들이 만만찮은 상대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확실히 보여줬다. 추가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보좌했던 마이크 펠란 코치가 헐 시티의 감독대행을 맡고 승승장구 중이다.
따라서 2016/17 시즌은 뛰어난 역량을 지닌 감독들의 집합체이자, 그들의 전술적 능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선수층을 갖춘 팀들의 모임이다. 한 가지 변수라면, 여름 휴식기 동안 유로 2016, 코파 아메리카라는 굵직한 경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U-23세 대표팀이 주축이었지만, 리우 올림픽에 선수를 차출한 팀들도 아예 영향을 안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참가하는 팀 입장에선 시즌 내내 빠듯한 경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현대축구의 특징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본적인 우승요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주축 선수들의 부상 없이 얼마나 탄탄한 선수단의 질과 양을 유지하느냐, 2)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감독들이 얼마나 적절한 대응능력(판단과 결정)을 보여주느냐. 이는 결국, 최상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현대축구는 매우 빨라졌다. 간결한 볼 터치와 패싱력이 강조되고 전방에서부터의 조직적인 압박으로 빠른 공수전환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만큼 코칭스태프는 더욱 빠르고, 확실하며, 정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선, 선수들의 체력 수준을 뒷받침시켜야 한다. 그다음 감독만의 철학(명확한 목표, 방법설정)과 지식, 정보, 경험이 있어야 하며 이를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감독의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2015/16 시즌은 좋은 예를 보여줬다. 먼저 '챔피언'이었던 첼시는 여전히 좋은 감독과 선수단을 유지했지만, 고인 물이 되었다. 선수보강은커녕 경쟁력을 가져갈 후보 선수들을 떠나 보내며 결국 선수단의 피지컬 능력은 상위클럽에 걸맞지 못했다.
맨유 또한 루이스 반 할이라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이자 경험 많은 감독이 팀을 맡았다. 첼시보다 많은 이적료를 들여 선수보강까지 끝마쳤다. 그러나 전체적인 선수단의 질이 떨어졌고 그의 고집은 아집이 되어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후폭풍을 맞이했다.
[레스터가 무실점 경기를 기념하는 피자 파티를 열었다.]
반면, 강등권에 있던 팀을 챔피언으로 만든 레스터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개인기량차를 이겨내고자 조직으로서 힘을 발휘했고 동기부여를 위해 피자 내기를 하는 등, 프로선수로서 너무 철저한 규율을 강조하지 않기로 했다. 겨울 이적시장서 우려했던 주축 선수들의 이탈 또한 없었고, 오히려 라이벌 팀과 다르게 컵 대회경기를 덜 소화하며 시즌 내내 폭발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라니에리 감독의 팀 체력유지와 명확한 목표, 방법 설정이 빛을 본 것이다. 체력의 경우, 앞서 말한 대로 타 경쟁구단보다 경기를 덜 치렀다는 덕을 봤다. 하지만 레스터가 최고수준의 스타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팀이 아니고 공 소유 대신 빠르고 많이 뛰는 축구를 하면서도 시즌 내내 큰 부상이 없었단 걸 생각하면, 피지컬 프로그램이 잘 짜여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상 피지컬 코치의 덕이 컸다.
그렇다면 라니에리 감독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빛을 본 부분은 어디였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로 심리와 전술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라니에리 감독은 그동안 전술, 지략 면에서 호평을 받아온 감독은 아니다. 그저 무너져 가는 팀의 '소방수'로서 팀의 잔류를 이끌어내고 기반을 만드는 감독에 적합했지, 장기간 팀을 이끌고 우승을 도전하는 유형의 감독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레스터가 보여준 축구는 '축구전술' 측면에서 크게 회자되었다. 대표적으로 축구 전술사를 다룬 책 'Inverted Pyramid'를 저술한 조나단 윌슨은 자신의 칼럼에서 "프리미어리그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유럽축구 무대 중 가장 흥미로운 리그는 아니다. 하지만 넓은 측면에서 봤을 때 레스터가 보여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전술로 리그 우승을 이끈 건, 상상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전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전술은 분명 2015/16 시즌의 전술 흐름을 지배했다"고 밝혔다.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전술 특징
지난 시즌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큰 전술적 특징은 크게 3가지였다. 1) 4-4-2의 투톱 공격수 기용, 2) 공을 따내는 탁월한 능력, 3) 백3의 가능성을 말한다.
레스터의 돌풍은 4-4-2 포메이션의 돌풍이었다. 이 포메이션은 90년대 초반 아리고 사키 감독이 이끌었던 AC밀란의 '플랫형 4-4-2'로, 이후 이탈리아와 발칸국가에선 3-4-1-2를 통해, 서유럽에선 4-2-3-1의 등장으로 약점을 노출한 포메이션이다.
1990년 오프사이드 규칙이 '동일 선상'으로 개정되고 1995년 이득 여부의 완화, 2005년 신체 부위 관여의 완화로 개정되면서 사키 축구의 특징이었던 '쥐어짜는(Squeeze) 압박'이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3열 포메이션의 개념은 빠르게 사라졌다. 높은 오프사이드 라인에서 압박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효율적인 플레이 구역은 35~40m에서 55~60m으로 멀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중원에 공간이 발생했다. 3열 포메이션의 4-4-2는 특히 미드필드진 앞뒤로 공간을 노출했는데, 이에 감독들은 공격수를 아래로 내려보냈다.
1) 왜 투톱인가?
그런데 이러한 4-4-2의 팀이 그것도 강등권에 있던 전력의 팀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레스터와 비슷한 예로, 키케 플로레스 감독의 왓포드도 투톱 공격수를 기용한 4-4-2 포메이션을 사용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공통점은 투톱 공격수의 역할이었다.
레스터는 활동량이 많고 수비능력이 좋으며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이는 오카자키 신지를 최전방 공격수 바디 아래 기용했다. 표면상 4-4-2지만, 엄연히 4-4-1-1로 구분짓는 게 맞다. 바디가 전방에서 골을 노리는 것이 주 임무라면, 신지는 수비적인 공격수로서 공격 포인트에 집착하기보다 몸싸움을 펼치며 전방에서 공을 지켜줬다.
왓포드는 오디온 이갈로-트로이 디니를 동시 기용했다. 레스터가 역할분담이 철저하다면 왓포드는 이보다 더 전형적인 투톱 공격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디니 또한 신지처럼 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수비적인 역할로서 이갈로를 보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팀 모두 공격수들의 수비의식이 좋았다. 바디도 예외는 아니다. 압박뿐만 아니라 빠르게 수비전환에 가담하고 선봉장으로서 손으로 동료의 움직임을 지시하며 상대의 빌드업을 제한했다. 그의 채널링(상대 공격을 한쪽으로 모는 수비)은 레스터가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고 수비할 수 있게끔 큰 도움을 주었다. 한편, 왓포드는 윌슨의 말을 빌려 '4-4-2-0' 포메이션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두 공격수가 아래로 내려와 간격을 좁혀줬다.
이렇듯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움직임은, 두 명의 공격수를 기용하는 것이 중원싸움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이겨냈고 오히려 투톱은 둘만의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상대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2) 왜, 4-4-2인가?
그렇다면, 왜 4-4-2일까? 4-4-2의 가장 큰 특징은 적용하기 쉽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공격수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촘촘한 간격유지는 포메이션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투톱의 영향력과 맞물려 '역습'이라는 강점을 최대화하기 적합하다. 수비 시 후방에 골키퍼를 제외한 8명의 선수 및 공격수의 수비가담, 즉 11명 모두 가담한 수비조직과 전방 2명의 공격수라는 수적 경쟁력은 상대적 약팀들에 몹시 매력적인 존재다.
따라서 지난 20일 번리가 리버풀을 2-0으로 꺾은 경기는 "승격팀들처럼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약팀이 레스터의 성공신화를 본받아 이번 시즌 강팀들을 더욱 괴롭게 할 것"이라는 예측의 첫 출발신호였다.
[출처-페이스북 축구 페이지 'Fanther Football' @fantherfootball]
레스터는 번리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기존에 하던 걸 조금만 더 콤팩트(Compact)하게 수비 집중도를 높인다면, 투 뱅크(Two Bank:두 줄 수비)만으로도 충분히 효율적인 공간 통제를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이와 비슷하게 스페인에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4-4-2 포메이션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똑같이 수비를 견고히 하며 역습 위주 플레이를 펼친다.
최전방엔 넓은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으며 골을 결정짓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 공격수(디에고 코스타-마리오 만주키치, 페르난도 토레스)를 두고, 바로 아래 공을 소유할 수 있고 빠르게 전진할 수 있으며 수비력을 갖춘 선수(다비드 비야, 앙투완 그리즈만)가 포진한다.
그리고 양 측면은 빠르게 공을 운반할 수 있는 직선적인 선수와 수비능력도 있고 측면으로 달릴 수도 있지만, 주로 안쪽으로 이동해 창의성을 더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하는 것 또한 위 예와 같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비록 4-4-2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도 유벤투스를 중심으로 백3 포메이션에서의 이러한 투톱과 측면조합이 두드러진다.
오늘날 기존의 공격수들은 미드필더를 강화하기 위해 원톱으로서 희생되었다. 이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패스축구 유행으로 어리석은 감독들을 부추겼다. 트렌드에 뒤처져 보이기 싫었던 멍청한 지도자들에 의해 무작정 4-2-3-1과 4-1-4-1 포메이션 등에 기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높은 공 점유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공격수가 쉽게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버렸다.
투톱은 고립될 가능성이 훨씬 더 작다. 약팀이든 강팀이든 전방으로 공만 보낸다면,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바가 확실하다.
[출처-페이스북 축구 페이지 '더 프리미어리그' @MorePremierLeague]
그러나 4-4-2는 전술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앞으로 다른 포메이션들 또한 촘촘한 간격유지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고 이러한 촘촘한 조직을 무너뜨리는 방안에 몰두할 것이다. 투톱 또한 이러한 한 가지의 방법으로서 포메이션 설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지난 몇 년간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디까지나 4-4-2는 프리미어리그서 경쟁력이 다소 뒤처지는 클럽들과 스페인의 두 마드리드 구단에 의해 '역습축구'로서 빛을 보고 있다. 분명 전술 흐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쳤고 비슷한 스타일을 펼칠 수 있는 4-1-4-1과 같은 다른 포메이션보다 꾸준히 사랑받을 것이다. 또한, 다시 4-4-2가 주류에서 벗어난들 몇 년 뒤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4-4-2가 지닌 장점에 따른 선택일 뿐, 과거 많은 감독이 4-2-4의 측면 문제점을 지적했듯 일시적 현상에 그치게 될 것이다. 대신, 현대의 영리한 축구 지도자들은 이를 계기로 머지않아 하위팀에서도 사용 가능한 투톱과 4-4-2 축구의 강점에 점유축구와 압박축구의 멋을 더한 전술을 들고나올 것이다.
방송 중계권료로 얻은 든든한 자금력과 개성강한 지도자들의 집합은 '강등'과 '우승'이라는 압박감서 더 완벽한 축구, 더 현실적인 축구를 구사할 것이며 이들의 만남은 프리미어리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것이다.
②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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