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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축구의 방향 (2): 현대축구의 흐름

하프타임 분석관 | 2016. 9. 2. 11:48

현대축구의 방향: 프리미어리그가 전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리그가 될 수 있을까?

축구 전술의 역사는 꽤 단순한 문제로 인해 발전해왔다. 


먼저 수비의 중요성이 커졌다. 최초의 축구는 1-0-9와 1-1-8 포메이션이 보여주듯 공격에 치중했다. 이후 잉글랜드에선 1-2-7 포메이션이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이마저도 1872년 자신들이 약팀이라고 깔봐왔던 스코틀랜드에 충격적인 0-0 무승부를 기록하자, 자존심 강한 잉글랜드인들 조차 그들이 사용했던 2-2-6 포메이션과 패스축구(공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수비전술이었다.) 스타일에 점차 사고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공격적이었던 축구는 수비와 패스의 중요성이 커지며 2-3-5(역피라미드), 3-2-2-3(W-M), 4-3-1-2, 4-2-4와 같은 포메이션들로 발전했다. 결국, 오늘날엔 5-4-1 포메이션처럼 극단적 수비위주의 선수기용까지 불러왔다.


축구 전술 발전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문제는 경기결과가 중요하냐, 플레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냐의 논쟁이다. 현대축구를 대표하는 단어, 지역방어와 체력, 압박이라는 개념은 6~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와 네덜란드의 '토탈풋볼' 두 가지 축구개념이 인기를 끈 시기로, 다들 알다시피 전자는 수비축구를, 후자는 공격과 패스축구를 상징한다.


이렇듯 축구 전술은 단순히 수비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 뿐만 아니라, 경기결과(실용주의)와 플레이의 아름다움(심미주의) 두 개념을 통해서도 상호 발전해왔다. 어찌 보면, 두 개념은 20세기 정치혼란 속에서 나타난 세계정서의 산물로 볼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글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던 오프사이드 규칙의 개정 또한 전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쯤 되면 단순한 문제가 그저 단순하지마는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좌-실용주의파 카를로스 빌라르도, 우-심미주의파 루이스 메노티]


3번째 충격


그러나 티키타카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의 축구 전술 흐름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제는 모두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최상의 방법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축구 전술이 발전하고 있다.


수비의 중요성은 이미 충분히 강조되었다. 영향을 미칠 만한 오프사이드 개정 또한 없었다. 실용주의와 심미주의의 논쟁은 치열한 순위다툼으로 인해 서로 간 합의를 본 듯 하다. 구단과 팬 모두 우승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어도 스타 선수를 내보내거나 시즌 내내 수비만 한다면, 아름다운 축구를 펼치더라도 승리가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사실에 냉정해졌다.


앞선 글에서는 투톱과 4-4-2라는 최근 축구 트렌드의 일부를 살펴봤다. 필자는 이를 2010년대 축구 전술사의 3번째 충격이라 본다. 첫 번째 충격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세계 축구를 장악한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패스 축구'를 꼽는다. 그 다음은 '게겐-프레싱'이라는 강력한 전방압박 축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위르겐 클롭 감독의 도르트문트를 꼽는다.


이들 모두 공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팀이자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고 자연스러운 전술 흐름이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경기 결과와 내용 모두를 만족시켰다.


사실, 패스와 압박의 개념은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왔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가 대단한 이유는 이것이 새로운 전술은 아니었지만, 이론을 실체화했고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실제로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고의 여건 속에 팀을 성장시켰다. 그는 요한 크루이프의 후계자로서, 동일 개념의 선구자 격인 후안마 릴로,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등의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 바르셀로나는 '토탈풋볼'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아약스의 뿌리였던 빅 버킹엄-리누스 미헬스-크루이프를 그대로 옮겨 심었다. 비록 성적은 안 좋았지만 '세계적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우도 라텍과 같은 감독들이 당시 이 팀을 거쳐 가기도 했다.


필자가 레스터의 축구를 3번째 충격이라 보는 이유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가 이러한 훌륭한 환경을 배경으로 전 세계의 축구를 통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 축구이론의 총집합, 결정체의 실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게임으로 따지면, 이전까지의 단계를 모두 완수한 팀이었고 새로운 축구 전술사(경지)를 이끄는 터닝 포인트였다.


따라서 이 다음에 오는 축구는 이것을 세분화하고 더욱 쉽고, 효율적으로 적용하려는 지도자에게 공략됐다. 대표적인 감독이 클롭이다. 그는 바르셀로나 축구에 큰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의 팀이 완벽히 그들을 따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바르셀로나의 압박축구에 패스 대신 역습축구를 접목(게겐-프레싱)했다.


게겐 프레싱과 롱패스 축구


게겐 프레싱은 강력한 수비블록, 높은 압박위치, 즉각적인 속공이라는 3가지 특징을 갖는다. 모두 스페인 축구의 약점과 관련 있다. 수비 블록은 상대가 플레이할 공간을 줄이고, 전방에서의 압박과 즉각적인 속공은 수비진을 높게 끌어올리는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에 위협을 가해 중원으로의 공 투입을 최소화한다.

[출처-페이스북 축구 페이지 'Fanther Football' @fantherfootball]


그럼 상대 플레이를 예측할 수 있고 공을 전방에서 끊어내자마자 빠르게 역습으로 이어가다 보니, 정비가 안 된 수비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를 통해 기존의 짧은 패스가 아닌 롱패스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게겐 프레싱은 상대 1차 빌드업을 저지한다는 점에서 큰 효과를 봤다. 하지만 압박하고자 높이 끌어올린 수비진은 상대가 뒷공간으로 단번에 찌르는 패스까지 완벽히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 또한 빠르게 역으로 노릴 수 있어야 했다.


한편, 점유축구를 펼치는 팀은 상대가 전방압박으로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효과적으로 상대를 공략할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두 팀 모두 다양한 공격패턴(롱패스)이 필요해진 것이다.


'점유축구의 대명사'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였다. 롱패스 효율성을 높여야 했다. 펩과 티토 빌라노바 감독 이후 부임한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은 이전보다 다이렉트 패스를 강조했다.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엔리케 현(現) 감독에 이르러서야 네이마르-루이스 수아레스-리오넬 메시라는 막강 공격편대에 힘입어 롱패스축구의 효율성을 최고조(14/15시즌 공격진이 득점의 90% 비중 차지)로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축구 전문지 포포투는 티키타카(Tiki-Taka)의 시대가 저물고 티키웨카(Tiki-Whacka)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 웨카는 '휘두르다'는 뜻으로, 중거리 슈팅을 의미한다.

[바르셀로나의 티키웨카 - 여전히 점유축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패스&무브보다 드리블&과감한 슈팅으로 이어간다.]


트렌드 변화


현대축구 전술의 흐름을 살펴봤을 때, 지난 몇 년간은 혼란기였다. 쉽게 말해, 세상에 뻗친 점유축구와 이를 상대하는 축구 스타일의 대결 구도였다. 기존의 점유축구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대표했다. 이에 대항한 안티(Anti)-바르셀로나는 무리뉴와 디 마테오 감독이, 선(先) 수비 후(後) 역습 축구는 안첼로티와 하인케스 감독이, 게겐-프레싱은 클롭 감독이 그리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가 레스터에 앞서 4-4-2 축구로 전 세계에 충격을 선사했다.

전술의 인식은 볼 점유의 중요성과 필요성 인지 및 강화, 볼을 어떻게 빼앗을 것인가, 볼을 빼앗은 다음 어떻게 역습해야 하느냐 순으로 변화했다.


점유축구의 탄생 이후, 일부 감독은 극도의 수비축구로서 이들을 상대했다. 아니 시간을 벌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듯 싶다. 이들은 혁신에 놀라 당장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2009/10 시즌 바르셀로나를 4강서 꺾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무리뉴의 인터밀란과 '기적같이' 2011/12 시즌 똑같은 방법으로 바르셀로나를 4강서 꺾고 우승한 디 마테오의 첼시는 점유축구에도 약점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런 면에서 선 수비 후 역습 축구는 기존 안티 바르셀로나의 공격적 진화였다. 현재 아틀레티코와 레스터 축구의 바탕을 이루는 이 전술은, 20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하인케스 감독의 바이에른 뮌헨과 이듬해 동일 대회서 우승을 차지한 안첼로티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가 대표적이다.


두 팀은 각각 4강전서 합계 7-0, 5-0이라는 대승으로 결승에 올라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때 4강서 패한 감독은 모두 점유축구의 부흥을 일으킨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패스축구를 상징하던 '티키타카'가 몰락한 순간이었다.


한편, 게겐 프레싱은 철저히 점유축구를 공략한 공격적 수단이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2010/11, 2011/12 시즌 각각 반 할과 하인케스 감독의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더욱이 스페인에선 강력한 전방압박을 펼치는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와 비엘사의 아슬레틱 빌바오가 2011/12 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서 맞붙었다. 이후 클롭과 시메오네는 점유축구를 펼치는 팀들을 꺾고 자신의 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려놓았다.


시대의 역습


2014/15 시즌을 거쳐 현대축구의 흐름이 기존의 짧은 패스축구에 빠른 속도전환을 기반으로 한 압박과 역습 그리고 롱패스의 조화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공을 빼앗은 다음 어떻게 역습해야 하는냐의 시대가 됐다. 전술적으로 지난 2015/16 시즌을 대표한 팀을 꼽자면, 바르셀로나와 토트넘, 레스터를 꼽을 수 있다. 이들 모두 '공을 따내는 탁월한 능력'이라는 전술적 특징을 보였다. 동시에 빠른 역습으로 이어가기 위해 롱패스와 역 역습을 강조했다.

[출처-페이스북 축구 페이지 'Fanther Football' @fantherfootball]

아래 그림은 2013/14 시즌 프리미어리그 팀 순위와 전방압박 강도를 나타낸 것이다. 압박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 PPDA(Passes Per Defensive Action)는 직역하자면 '수비액션 당 패스허용'이라는 뜻으로, 수비진영에서 패스를 허용한 수치에 수비 상황에서의 수비액션 수치를 나눈 값이다. 패스가 적다는 건 그만큼 상대진영서 플레이했다는 것이고 수비액션은 직접수비(태클, 가로채기 등)를 말한다.


팀 최종성적과 완벽히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 다른 점유축구 강자 아스날을 제외하곤 크나큰 상관 관계를 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빠른 수비전환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레스터(리그 1위)는 지난 시즌 리그 최다 가로채기와 태클 기록을 보유했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는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유럽 전체서 이 분야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한, 클롭의 리버풀(유로파 준우승)은 최다 태클 부문서 레스터와 동률을 이루었고 토트넘(리그 3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윌슨은 "레스터와 토트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공을 따낸다"고 말한다. 팀의 수준과 수비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우선, 바르셀로나는 최상위 레벨의 구단으로서 점유축구를 기반으로 세계정상급 공격수까지 합세하며 더욱 완벽해졌다. 애초에 공을 빼앗기지 않고 공 소유권을 유지하다 순간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 이들의 수비인식이다.


토트넘은 상위레벨에 포함할 수 있지만, 이보다 아래 레벨의 구단이다. 한때 점유축구를 이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클롭의 도르트문트처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지휘 아래 전방압박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바르셀로나처럼 압도적으로 공을 소유할 수 없으니, 공을 잃는 즉시 전방서부터 빠르게 공을 빼앗아 곧바로 위협을 가한다.


반면, 레스터는 하위권 팀이다. 공을 빼앗는 방법의 접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단 상대 공격을 지연하고 라인을 내려 중원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역습 시엔 누구보다 빠르고 과감했다.


이들 모두 조직적이고 빠르게 촘촘한 대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상대팀 입장에서는 공략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상대팀이 공략할 공간을 찾기는커녕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다. 빠르게 이를 되찾아 전방서부터 어떻게 역습해나갈지 '역 역습'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 현대축구의 방향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빠른 공격수가 다시 전면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무척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아레스, 바디, 피에르 오바메양과 같은 선수들은 공간 플레이에 능한 침투형 공격수로서 순식간에 상대 배후로 파고들 수 있다.


점유축구와 게겐프레싱은 훌륭한 전술이나 축구계 대다수를 이루는 중-하위권 구단은 경기 내내 조직적이고 세밀한 축구를 펼치기 어려웠다. 반면, 롱패스가 가미된 역습은 모두가 아는 단순한 전략이었다. 레스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하여금 롱패스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더욱이 현대축구 전술의 흐름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최상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기본으로, 다양한 축구 철학의 장점을 더해야 함을 보여줬다.


③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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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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