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더비'는 1-1로 끝이 났다. 치열한 경기였다. 서로가 신중의 신중을 더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갔다. 선제골은 이카르디의 발끝에서 나왔다. 후반 73분 알바레즈의 패스를 이어받아 승부의 균형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사모아가 재빠르게 수비진을 공략하며 비달의 골을 도운 것. 선제골이 터진 지 고작 2분만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 명문팀의 이름값과 선두경쟁보다도 두 감독의 만남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리그에서 적수가 없어 보이던 유벤투스의 유일한 복병이 과거 마짜리가 이끌던 나폴리였기 때문이다.
이 둘은 총 6번의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3승 2무 1패로 콩테가 앞선다. 사실, 적은 경기 수와 상대 전적은 이 둘의 만남을 그다지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매 경기 2골 이상이 터졌다는 점과 나폴리의 유일한 1승이 유벤투스의 '무패 더블'을 저지한 승리(코파 이탈리아 결승)라는 점. 게다가 지난 시즌 유벤투스와 선두 경쟁을 펼친 유일한 팀이 나폴리였다는 사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또한, 이번 '이탈리아 더비'는 콩테의 유벤투스 부임 이후 100번째 경기이자 마짜리의 인테르 부임 이후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Back 3
매우 조심스러운 경기는 매우 조심스러운 '3백 시스템'의 결과다? 마치 어리석은 칼럼을 다룰 때나 사용하는 제목 같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현대축구에서 3백은 절대 퇴보한 극도의 수비 위주 포메이션이 아니다. 현 세계 최강팀이라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시티가 다시금 3백을 꺼내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3백의 메리트는 상당하다.
최우선은 역시나 공수 양면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중원에 더 많은 선수가 가담해 미드필더진을 강화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5백으로 변하는 수비진은 견고한 수비조직을 만든다. 이번 경기는 이 특성을 아주 잘 살린 경기였다. 결과상 화끈한 공격보다 촘촘한 수비가 더 빛을 보았지만 말이다.
Defense
인테르는 윙백 또는 캄비아소의 움직임에 따라 1-4-4-2 혹은 1-5-3-2전형으로 수비했다. 무게 중심을 깊게 내리고 천천히 상대를 터치라인으로 유도했다. 이는 측면 공격이 활발한 인테르의 최선의 수비법이었다. 유벤투스가 12개의 스로인을 얻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인테르는 단지 3번의 스로인을 얻었다. - 무려 4배에 달하는 수치.
위 그림에서처럼 유벤투스는 크로스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총 9번의 크로스를 시도해(인테르는 18번 시도) 단 한 번만을 성공했다. 대부분의 공격은 짧은 패스를 통해 중원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지공 상황에서 보누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하프라인을 넘어 빌드업을 전개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 인테르의 경우, 공격을 시도하는 측면의 수비수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센터백은 하프라인 아래에 머물었다.
한편, 유벤투스의 수비 전형은 1-5-3-2포메이션이었다. 측면 플레이가 활발한 상대의 공격을 막고자 폴 포그바와 아르투로 비달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아래 그림은 두 팀의 태클 분포도를 나타낸 것이다. 주로 중원에서 공을 점유한 유벤투스와 측면에서 공을 점유한 인테르의 모습을 아주 잘 확인할 수 있다.
콩테는 이점을 염두에 둔 것일까. 경기 초반 비달은 자주 오른 측면으로 빠져 있었고 리히슈타이너는 높이 자리한 4백의 풀백과도 같았다. 물론, 3명의 역삼각 미드필더진이 구성되었어야 할 중원에는 포그바와 피를로가 나란히 서 있었다.
Cambiasso v Pirlo, and Taider
'이탈리아 더비'는 3백 시스템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활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주 잘 나타낸 경기였다. 마짜리와 콩테는 모두 1-3-5-2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중요한 경기인만큼 적절한 밸런스 유지와 강력한 정신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후방 플레이 메이커라 할 수 있는 선수의 스타일은 달랐다. 피봇 또는 볼란테, 아니 이탈리아 축구 이야기니 레지스타라 해야겠다. 각각 캄비아소와 피를로는 팀의 중추를 담당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대부분의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두 선수는 엄연히 다른 유형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직접적인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우선 차단하는 유형이라면, 후자는 말 그대로 대표적인 레지스타, 경기를 풀어가는 비교적 공격 성향을 띤 선수라 할 수 있다.
이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치열했다. 캄비아소가 전후방을 넘나들며 피를로를 전담하듯 압박했기 때문. 그 덕에 피를로는 쉽게 상대 진영에 머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빠른 수비 정돈과 날카로운 긴 패스로 공격 전환을 이끌어 내는 모습은 놀라웠다.
다소 아쉬운 점은 전반 45분간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후반 들어 인테르는 캄비아소의 전진을 줄이며 안정된 경기운영을 했다. 그 대신 타이데르와 코바치치가 이 역할을 꾸준히 수행했다. 그리고 타이데르는 캄비아소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 왜 그가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는지 알 수 있었다. 2번의 슈팅, 무려 98%의 패스 성공률(7번의 긴 패스 성공 포함), 4개의 태클과 3번의 인터셉트 등. 든든한 수비진의 지원 속에 공수양면을 휘어잡았다.
그렇다 보니 콩테는 코펜하겐 원정을 앞두고 피를로를 87분이나 뛰게한 후에야 파도인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Ricky Alvarez
벌써 2번의 MOM, 1골 1도움, 91.9%의 패스 정확도. 리키 알바레즈는 마짜리 감독의 새로운 황태자로 떠오르고 있다. 리그 내, 동(同) 포지션 최고봉인 마렉 함식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실력이다. 그는 '이탈리아 더비'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두 팀 모두 워낙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을 펼친 탓이었다. 주로 조나단의 오버랩을 뒤에서 받혀주었을 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후반에는 팀이 확실한 주도권을 잡으며 탄력을 받았다. - 경기 전반을 살펴보면, 조나단이 자주 중앙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주로 알바레즈가 머무르며 역습을 노리는 곳이다. 문제는 알바레즈가 측면에 묶여 이런 부조화가 발생한 것이다.
기록만 봐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알바레즈는 경기 전반 2개의 키 패스에 성공했고 78%의 패스 정확도를 보였다. 반면에 경기 후반에는 골을 도운 어시스트를 포함한 2개의 키 패스와 더불어 88%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백발백중의 긴 패스와 전매특허인 드리블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다.
Conclusion
1-1 무승부의 결과는 선제골을 넣은 인테르에 아쉬움을 남겼다. 홈 경기 여부를 떠나 팔라시오, 캄파냐로 등 모든 선수가 아주 좋은 경기력을 펼쳤음에도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순간의 집중력이 아쉬웠다.
순간 집중력을 살린 유벤투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유일한 약점이었던 골 결정 문제를 해결하려 요렌테와 테베즈를 영입했다. 하지만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수비진이 높은 패스 성공률(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 각각 94%, 97%, 91%)을 보이며 안전하게 공을 투입한 것에 비해 너무 초라한 위협이었다. 미드필더의 부진도 마찬가지. 부치니치는 단 한 번의 슈팅도 날리지 못했고 테베즈도 몇 차례의 드리블을 제외하곤 딱히 보여준 것이 없다.
어쨌든 승점 1점은 두 팀이 보여준 경기력에 어울리는 결과였다.
* 그림 = [콩테와 마짜리 사진] http://bit.ly/1eK3ZL5, [나머지 그림] 포포투 스탯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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