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기의 새로운 구상, 트리플 세션
하프타임 분석관 | 2013. 1. 14. 20:09
지난여름, 많은 전문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맨유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마지막 라운드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우승 경쟁을 다툰 팀이었으나 많은 이들은 유로파 리그로 떨어져 버린 맨유의 자존심과 더는 기대할 수 없는 노쇠한 '퍼기의 아이들'이 라이벌 클럽들의 쟁쟁한 영(Young) 스타들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맨유는 가장 핫(Hot)한 2명의 선수를 올드 트래포드로 데려오며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그 첫 번째 선수는 도르트문트의 핵심자원이자 일본의 플레이 메이커 "카가와 신지"이다.
맨유는 독일에서 카가와 신지, 이탈리아에서 웨슬리 스네이더, 스페인에서 메수트 외질을 관찰하며 팀 구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타겟은 스네이더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스네이더의 영입은 뜻처럼 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카가와는 더욱 성장한 클래스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고 직접 잉글랜드로의 이적 가능성을 밝히기도 하며 맨유로 이적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이후로 외질은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멤버로 자리매김한 상태였고 카가와는 스네이더만큼의 인정을 받는 선수도 이적 가능성이 높은 선수도 아니었다.
두 번째 선수는 아스날의 로빈 반 페르시. 11-12시즌만큼은 메시, 호날두가 부럽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30골로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0-11시즌에는 18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3위를 기록하더니 불과 1년 만에 득점력이 2배로 상승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스날의 우승은 멀어 보였고 결국, 반 페르시는 라이벌 맨유를 차기 행선지로 선택했다.
맨유는 분명 최고의 선수를 둘씩이나 영입했고 주축 선수들의 이탈도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맨유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라이벌 클럽들과의 영입경쟁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은 탓에 체면만 구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나마 데려온 새로운 영입생들마저도 과연 퍼거슨 감독의 전술에 적합한 선수들인가에 대한 의문이 컸다.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포메이션 1-4-4-2를 중심으로 한 1-4-3-3, 1-4-2-1-3 혹은 1-4-2-3-1였다. 언제나 핵심은 1-4-4-2 형태에서 양 측면 윙어들의 플레이를 살린 빠른 공격이었다. (퍼거슨은 자신의 팀이 1-4-4-2가 아니라고 밝혀왔다.) 이러한 전술은 줄곧 1-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소화하던 카가와 신지에게는 충분히 수비 부담의 증가와 측면 플레이에 대한 문제를 안기는 전술로 보였다. 한편, 반 페르시의 입장에서는 루니와의 호흡이 큰 관건이었다. 두 선수 모두 넓은 활동 범위를 보이며 팀의 득점을 책임지는 선수다 보니 두 선수의 공존 가능성이 이슈화 되었다. 자연스레 일각에서는 퍼거슨 감독의 1-4-2-3-1로의 주 포메이션 전환 여부와 카가와-루니-RVP의 활동 영역 중복에 대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왜 자신이 맨유의 수장으로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이번 시즌을 통해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포메이션의 숫자가 선수의 위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하고 있다.
왼쪽 그림은 시즌 초반의 형태를 나타낸다. 맨유는 1-4-4-2를 고수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1-4-2-1-3스러운 형태였다. - 발렌시아의 움직임에 따라 1-4-3-1-2.
시즌 초반의 맨유는 왼쪽 라인을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전적으로 맡긴 모습이었다. (바르셀로나의 다니 알베스 역할과 비슷) 카가와는 중앙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선보였고 왼쪽 측면의 대니 웰백은 전방으로 자주 가담하며 실질적으로 투톱형태인, 2~3명의 공격수가 상대 수비진 주변에서 움직였다. 반대편 윙어는 횡적 움직임이 강조되는 어시스터의 역할이 컸다. 중앙에서는 캐릭이 클레버리보다 약간 처진 위치에서 볼 배급을 도맡는 역할을, 클레버리는 많은 활동량으로 강한 압박과 패스 채널의 증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왼쪽 뒷공간의 노출을 발생했다. 처음에는 카가와가 이를 커버하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여러 역할을 한 번에 수행하기에는 무리였다. (웰백의 수비력도 아쉬웠다.) 결국, 이 모든 부담은 클레버리의 몫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역할의 과부하로 전방의 RVP와 카가와의 활동 영역도 상대 골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 전방에서 카가와의 수비 가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웰백 대신 애쉴리 영을 투입해 조금 더 원톱 체재에 가까운 구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가와가 무릎 부상을 당하며 루니-반페르시-카가와로 이어지는 조합의 호흡을 얼마 맞춰보기도 전에 퍼거슨 감독은 다시 카가와가 없는 투톱에 치중한 경기를 다시 준비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시즌 초반의 맨유는 상당히 불안했다. 많은 실점에 이은 불안한 경기력이 강팀, 약팀을 불문하고 가장 큰 불안요소로 작용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이적시장에서 거금을 쏟은 첼시와 맨시티의 선두 경쟁이 새로운 시즌의 개막을 알렸고 맨유는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맨유는 역시 맨유였다. 시즌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승점을 쌓아갔다. 로빈 반 페르시와 '수퍼 조커' 치차리토의 호흡은 예상보다 더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다가오는 경기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들에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웨인 루니가 잔부상에 시달리며 이런 저런 역할을 소화하는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RVP와 치차리토 조합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기존의 움직임보다 더 유연하게 움직였다. 치차리토는 최전방에서 전형적인 골게터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RVP는 아스날에서 펼치던 플레이를 더 높은 지역에서 이어갈 수 있었다. 측면의 영과 발렌시아는 더 다양한 공격이 가능해졌고 카가와는 중앙으로 움직이며 No.10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에브라의 움직임이다. 웰백과의 호흡에서는 많은 수비불안을 보이며 어정쩡한 플레이가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이번에는 카가와 신지와 에브라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졌다. 그리고 수비 걱정도 덜게 되었다. - 수비진을 잡아둔 공격수들의 무게도 한 몫.
최근의 맨유는 어떤 모습일까? 위 두 그림은 최근 변화한 맨유의 포메이션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 중 우측 그림은 지난 리버풀전의 포메이션인데, 웰백이 처진 공격수로 기용되고 반 페르시가 최전방 공격수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만하다. (상대에 따른 변화였다.)
평소와 같았다면, 반 페르시보다 웰백의 위치가 더 높았어야 했다. 물론, 경기 중 서로 움직임을 바꿔간다. 하지만 치차리토가 기용되었을 시에도 그렇듯이 둘 중 한 명은 최전방에 머무르고 나머지 한 선수가 처진 위치에서 볼 배급과 수비 가담을 맡는 게 퍼기의 투톱이 갖는 특징이다. 그런데 왜 퍼기는 리버풀전에서 웰백을 처진 위치에 두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웰백 보다 반 페르시가 전방에서 확실한 득점원이 되어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와 동시에 웰백의 저돌적인 움직임이 리버풀의 라이트백 안드레 위즈덤을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이다. 실제로 맨유의 선제골은 반 페르시의 감각적인 움직임을 통해 터졌다. 노련한 움직임으로 경기 내내 수비진을 공략하더니 골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또, RVP는 웰백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까지 해냈다. 결국, 위즈덤은 다우닝과 함께 에브라, 웰백의 움직임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 맨유는 반 페르시의 선제골 이후, 웰백과 반 페르시의 위치 조정을 가져가며 기존의 플레이로 돌아갔다.
리버풀전에 대해 더 말해 보자면, 맨유의 압박이 돋보인 경기였다. 웰백은 조 알렌을 압박하고 클레버리는 위즈덤을 강하게 압박하며 리버풀이 수비 진영에서부터 원만한 볼 전개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루카스는 RVP와 카가와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결국, 제라드가 내려와 볼 전개에 힘써야 했다. (반대로 맨유의 캐릭은 압박보다 패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맨유의 새로운 구상은 끝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웨인 루니가 걸린다. 나는 카가와 신지가 처음 기용되었을 때부터 그의 직접적인 라이벌은 웨인 루니라고 생각해 왔다. 루니는 반 페르시와의 경쟁 구도도 가지며 이 셋의 공존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현시점에서는 루니가 카가와 신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루니가 경쟁 구도에서 빠진다면, 그다음은 애쉴리 영과 라이언 긱스뿐이다. 루니에게 퍼거슨 감독이 왜 더 많은 득점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루니의 가담은 현재 맨유가 경기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겪는 급격한 기동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존 조합보다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클레버리는 리그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기에 마땅한 대체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핵심 자원이 설사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맨유의 우승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 루니의 존재는 주목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루니의 가담은 득점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들의 득점력이 저하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옆 동네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만 보더라도 나스리-실바-아구에로-테베즈가 호흡을 맞추었을 때 많은 이들의 생각만큼이나 득점력이 좋지는 않았다. 문제는 확실한 득점원의 부재였다. 개개인 모두가 뛰어난 공격 본능을 지니고 있는 선수들이나 하나가 되어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갔을 경우, 박스 내에서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버리는 선수는 없었다. 만약, 맨유도 이러한 경우가 생긴다면, 퍼거슨 감독은 웰백, 치차리토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가와는 No.10의 역할을 잘 해주고 있으며(몸싸움, 수비가담 훈련 필요) 반 페르시는 공격수로서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해주고 있다. 이제는 다시 기존 멤버들과의 조합으로 최상의 전력 구성을 마쳐야할 시기이다. 현재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팀은 굉장히 훌륭한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유럽 대항전과 컵 대회 경기에서의 경쟁력을 함께 갖추려면 경기 끝날 때까지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탄탄한 구성과 저력이 있어야만 한다. 과연, 퍼거슨 감독이 클레버리, 카가와, 루니를 이용해 어떻게 전술에 변화를 줄 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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