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상대보다 1골 더 많이 넣으면 승리하는 경기이다. 제니트는 이 공식을 전적으로 잘 보여주며 다음 단계로 진출했다. 홈팀 모르도비아는 수비에 무게를 둔 채 경기 내용 면에서 제니트를 완벽하게 몰아붙였지만, 골이 부족했다.
2009년 5월 이후, 모르도비아가 제니트를 꺾을 수 있었던 가장 가능성 높은 경기였다. 단판 경기이다 보니 모르도비아는 정신적으로 더욱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그들은 결코 동료의 사소한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적절한 간격 유지와 압박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제니트로서는 여러 대회에 참여해 체력적 부담이 크게 느껴진 경기였다. 경기 전,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은 케르자코프, 비스트로프, 롬베르츠 등을 선발 명단에 올리지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시작한 경기는 꾀나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르도비아는 일찍이 수비 태세로 전형을 갖추고 역습을 시도했다. 제니트는 전방에 많은 선수가 머무르고 있었으나 마치 의욕을 잃은 듯한 힘 없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경기는 간단히 말해 압박과 두 팀의 부정확한 패스다.
20분의 시작
경기 전반은 모르도비아의 '공수전환'에 따른 경기였다. 기본적으로는 수비에 치중한 4-3-3과 4-5-1을 병행하며 수비 지역에서 볼을 돌리다 순간순간 측면을 공략하였다. 그들은 볼의 유무, 두 측면을 봤을 때 매우 깔끔한 경기 운영을 펼쳤다. - 우선, 페널티 에어리어를 최종 수비 라인으로 전후방 간격을 20~25m로 좁혔다. 그리고 상대가 전진할 경우, 볼에 근접한 선수가 견제해 상대의 공간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패스, 읽히는 패스가 발생하면 재빨리 높은 지역까지 올라온 측면 수비의 뒷공간을 공략했다. - 제니트의 전방압박은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며 모르도비아의 공격은 단순함에도 성공적이었다. (알렉스 이바노프와 시릴 판첸코만으로도 제니트 수비를 괴롭히는데 충분했다.)
체력과 컨디션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니트는 전방 압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며 많은 수비수 사이에 묻혀있을 뿐이었다. 헐크의 개인 능력에 의한 공격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헐크만큼의 드리블 능력을 지니지 못한 반대쪽 카눈니코프의 플레이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20분이 지나는 시점, 경기에 불이 붙었다. 스팔레티 감독은 헐크의 위치를 처진 공격수로 조정하고 전방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헐크의 드리블, 중거리 슈팅은 골문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모르도비아는 이를 저지하려다 페널티 에어리어 주변에서 잦은 파울을 범했다. 그러나 모르도비아는 물러설 수 없었다. 타의적으로 수비 라인을 조금 더 높게 올려야 했지만, 롱패스로 역습을 시도하며 천천히 압박의 위치를 높게 가져갔다. 그리고 제니트보다도 더 나은 공격력을 선보였다.
제니트의 전방 압박은 상대 수비진의 실수를 쪼아대며 모르도비아의 공격보다 더 골문 가까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파울로 저지되었고 프리킥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반면, 모르도비아의 롱패스 공격은 골문과 먼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수적 열세인 상대 수비진에게 더 큰 부담을 가중시켰다. (같은 파울을 범해도 제니트의 파울은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팀 모두 세트피스 상황이 위협적이지 못했다.
두 개의 진영
경기 내내 부정확했던 양 팀 패스 정확도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상대 문전 앞에서 패스 미스를 자주 저지른 팀과 자기 진영에서 패스 미스를 자주 저지른 팀, 과연 어느 팀이 더 나은 경기 결과를 가져왔을 거라 생각하는 게 그나마 상식에 더 가까울까?
전자는 바로 제니트의 얘기이고 자연스레 후자는 모르도비아의 얘기이다. 제니트의 공격력은 최근 그 어떤 경기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실망스러운 플레이였다. 확실히, 단순 공격진의 탓만은 아니다. 많은 수비를 뚫기란 바르셀로나에도 힘든 일이며 대부분이 체력 부담이 크니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제니트는 무리해서라도 볼을 골대 가까이에 붙일 필요가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 보면, 선수들은 차가운 인조 잔디 위에서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좁은 공간을 파고들고자 패스를 거듭했고 결과는 항상 부정확했다. 결과론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어리석은 판단은 프리킥과 같은 천금 같은 기회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후반 65분 헐크의 크로스에 이은 세르게이 시막의 골은 바로 이런 플레이에서 나왔다. 코너킥 실패 후, 오른쪽 측면에 있던 헐크가 왼발로 감아 찬 볼이 모두의 키를 넘기고 흐른 것을 쇄도하던 시막이 슬라이딩으로 멋지게 마무리한 것. 수비 집중력을 강조하던 모르도비아로서는 헐크를 압박하지 못한 측면 수비를 탓하는 모습이었으나 사실, 이전부터 상대 골문 바로 앞에서 득점하지 못한 자신들의 플레이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르도비아의 실수는 잦아갔다. 분위기가 넘어간 상황에서 체력부담은 더 크게 다가왔고 미드필드와 최종 라인의 간격은 점차 벌어졌다. 또, 위험지역에서 잦은 패스 미스를 저지르며 제니트가 더 편하게 공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결국, 후반 91분 크리시토의 추가 골까지 허용하며 이변의 경기를 놓쳤다. (크리시토의 슈팅은 부정확한 크로스였다.)
결론
이 경기는 철저하게 득점으로 결정되었다. 모르도비아는 좋은 간격, 압박, 움직임, 전환이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몇 번의 사소한 실수를 오직, 제니트에 딱 하나 있던 '골'이란 패에 당했다. 물론, 측면을 파고든 이바노프와 경기장 전체를 파고든 판첸코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에서는 중원에서 볼을 소유하고 다시 돌려줄 플레이 메이커의 부재가 아쉬웠다.
11월을 맞이할 제니트에 이번 경기는 매우 중요했다. 앞으로 여러 대회에서 강팀들과의 만남을 연이어 가질 그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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