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가 콜롬비아에 전하는 미래 메시지
하프타임 분석관 | 2016. 6. 24. 17:42
출처: 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60624131405450&gid=120245
코파 아메리카 공식 홈페이지 캡쳐
To. 콜롬비아
“해야만 할 거다”
1934년 시카고 블랙호크스라는 NHL(미국 아이스하키 리그) 팀을 이끌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토마스 고먼 감독의 말이다.
고먼은 자신이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우리는 상대에 공을 내줬을 때, 후퇴해야만 하는가? 얼마 후 그는 지도자가 되었고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포어체킹'(Forecheking), 그가 붙인 이름이다. 고먼은 “포어체킹이 리그에서 우승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시카고는 후방에서 공격을 풀어가는 상대 선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한 명의 선수가 공 잡은 선수를 향해 달려들면, 다른 선수는 패스 길목을 차단했다. 상대가 서둘러 공을 처리하거나 무리한 패스를 시도한다면, 나머지 선수들이 가로챘다.
상대 선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직접 퍽(하키 공)을 몰고 가려 해도 순식간에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였다.고먼이 본능적이라 생각했던 수비전환이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었다.
오늘날 포어체킹은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대신 요즘은 포어체킹이란 말보다 게겐프레싱이란 용어가 대세를 이룬다. 국가별로, 지도자별로 이를 지칭하고 추구하는 바는 다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전방서부터 상대가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는 데서 같다. 따라서 본문에선 이를 전방압박이라 칭하겠다.
빠른 공수전환;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강한 압박, 수적우세
위 단어들은 전방압박과 관련된 말이다. 그리고 칠레 축구를 상징한다. 칠레는 강한 전방압박을 펼치는 대표적인 팀이다. 이번 콜롬비아와의 경기, 멕시코와의 8강전, 심지어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모두 칠레는 똑같은 철학인 강한 전방압박을 펼쳤다. 선수들의 체격은 작고 다른 팀들에 비해 개인기량이 월등히 뛰어나지도 않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적극적이며 꾸준했다.
축구 전술사에 능해 전 세계 축구팬들의 존경을 받는 칼럼니스트 조나단 윌슨은 전방압박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공을 가진 선수에게 가차없는 압박을 가하려면 미드필더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엄청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과거 이 전술이 불가능했던 이유를 알겠다" 이는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지휘 아래 강한 압박축구 보여준 일명 '토탈풋볼'이라 불리우는 네덜란드 팀의 등장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미헬스 감독은 이러한 끊임없는 압박을 펼치려면 팀에 최소 3~4명의 세계 최고 수준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칠레는 결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 같은 팀들처럼 개인기량이 출중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게겐프레싱'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세계정상에 선 위르겐 클롭 감독의 도르트문트가 떠오른다.
그 또한 처음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부임한 당시, 팀에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한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독일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장악했다. 바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끈 바르셀로나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역압박'으로 말이다.
역압박
압박축구에 대해선 요즘 꼬마들도 다 안다. 선수들이 동시에 어떻게 움직이고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지 컴퓨터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역압박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처럼 단순히 말로 설명해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저한 연습이 필요하다.
"본능을 단련해야 한다. 공을 내준 후 바로 되찾을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하는 본능, 이는 상황훈련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올 때까지 본능을 가르친다." - 위르겐 클롭
서두에서 언급했듯 고먼 감독은 공격 이후 수비로 돌아가는 본능에 의구심을 가졌다. 클롭 감독이 이토록 본능을 강조하는 것 또한 결국, 강한 전방압박을 펼치려면 훈련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칠레의 본능은 살아있다. 과거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으로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오른쪽 코너킥 공격 장면이다. 보통 코너킥 상황이라면 공격수들은 골을 넣기 위해 페널티 박스 안을 가득 메운다. 대신 키 작은 풀백들이 하프라인이나 그보다 더 앞에서 상대역습에 대비한다. 그런데 칠레를 보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프란시스코 실바를 포함해 풀백 장 보세주르와 마우리시오 이슬라가 높이 전진해 있다. 세컨볼을 노림과 동시에 전방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기 위함이다.
위 장면은 골킥 이후 상황이다. 길게 넘어온 공을 콜롬비아 중앙 수비수 크리스티안 사파타가 머리로 걷어낸 걸, 세컨볼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이때 칠레 선수들의 위치를 보자. 공을 차지하려는 선수 이외에도 공 주위에 선수들이 가깝게 모여있다. 보세주르는 후안 콰드라도에게 공이 갈 시 바로 압박할 수 있고 차를레스 아랑기스는 상대가 세컨볼을 차지하면 패스 길목을 막거나 다가가 압박할 수 있다. 이는 알렉시스 산체스와 에두아르도 바르가스도 마찬가지다.
칠레는 결국 다음 장면서 공을 따낸다. 산체스가 로빙패스를 시도하다 상대에게 차단되지만, 곧바로 같은 방법으로 세컨볼을 차지한다.
[상대가 공중볼을 처리하지 못하면, 빠른 칠레 공격수들의 먹잇감이 된다.]
다음 상황을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칠레 선수들은 골킥 한 공을 직접 따내려 경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위로 많은 선수가 몰려있고 이들은 자신의 앞에 상대 선수를 두고 있다.
바로 이어지는 상황인 두 번째 그림을 보면, 이러한 칠레의 위치선정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공을 잡으려는 콜롬비아의 로저 마르티네즈는 수비수가 빠르게 따라붙는 상황서 골문을 등질 수밖에 없다. 패스하고 싶어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공을 몰고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더욱이 동료들은 상대 진영으로 달려드는 상황이 못되고 패스 받을 준비가 되어있기도 어렵다. 신장이 크지 않은 칠레로서는 이만한 공중볼 전략도 없다.
혹자는 그럼 저기 보이는 수비수를 향해 백패스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실제로 아무리 압박이 빠르고 거칠더라도 사람인지라 다가오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패스는 오히려 칠레가 원하는 바다. 저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공을 전달할 수 있는 클래스의 팀은 많지 않다. 혹여 백패스가 전달되더라도 칠레 선수들은 패스 길을 예측하고 상대 골문을 바라본 채 압박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공 소유권을 되찾아오지 못한다면, 칠레는 이미 수비조직을 갖추고 중원에서의 압박을 기다린다. 보통 칠레처럼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팀은 전환이 쉽다는 점에서 좌우 윙어가 내려가는 4-1-4-1 형태로 수비조직을 갖춘다. 하지만 칠레는 수비형 미드필더 또는 이날처럼 오른쪽 윙어(호세 페드로 푸엔살리다)가 내려가 5백처럼 서 5-4-1 혹은 4-4-2 형태로 수비한다. 그만큼 촘촘한 간격을 이뤄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럼 약점을 갖는 공중볼 경합 시 유리함을 가져갈 수 있고 상대의 개인 능력과 날카로운 패스 또한 저지하기 쉽다. 더욱이 상대가 득점할 수 있는 위험지역을 내주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다. 또, 공격 시에는 상대가 올라온 만큼 넓은 뒷공간을 노릴 수 있다. 공 주위서 수적우세를 가져간다는 장점도 있어 짧은 패스와 출중한 드리블 실력으로 빠르게 전진할 수 있는 칠레에게 내려선 수비조직은 역습 시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칠레의 이러한 수비단계는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팀이 단순히 상대에게서 공을 빼앗아 소유권을 가져온다는 압박의 개념을 넘어, 상대의 위험지역에서 공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즉, 특정 상황이나 지역서 의도적으로 공을 내주고 이를 빼앗아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 지역과 상황이란, 좁은 공간에서 수적우세를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게 현대 축구의 트렌드이자, 미래 축구인 역압박이다.
"해야만 할 거다"
다른 팀들도 포어체킹을 쓰게 될 거 같냐는 질문에 대한 고먼 감독의 답이었다. 더불어 칠레가 미래에서 콜롬비아에 전하는 메시지였다.
호세 페케르만 감독이 이끄는 콜롬비아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라다멜 팔카오를 필두로 4-1-3-2 포메이션을 사용해 전방압박과 롱패스에 이은 빠른 공격전환으로 남미 축구의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날 모습은 현대축구의 강호라 부르기에 부족했다. 그저 자신들의 스타플레이어를 향해 뻥뻥 차댔고 상대의 압박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반면, 칠레는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최신 트렌드를 주도했다. 콜롬비아로서는 마치 미래에서 온 팀과의 대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From. 칠레
분석= 전주대학교 박경훈 교수, 전주대 축구학과 경기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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